인터비즈 / 201-05-16 / 임현석, 신유진 기자 / [기사 전문 보기]
“틈새시장인데 어마어마한 틈새죠. 가트너는 기업 대상 IT 시장이 향후 5년 안에 4000조 원까지 커진다고 하네요.
한국이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한다는게 말이 안 되죠. 여기서 파생되는 산업만 잡아도 미래 먹거리가 해결될걸요.”
베스핀글로벌 이한주 대표(47)가 한국 IT 산업에 던지는 화두다. 베스핀글로벌(Bespin Global)은 국내 IT업계에서 그 위상이 독특하다. 베스핀글로벌은 IT 관련 인력이 없거나 적은 회사도 아마존이나 MS, 네이버 등이 운영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끔 해주는 이른바 클라우드 관리 서비스(Cloud Managed Service)를 제공한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기업 비즈니스를 위한 대규모 IT 인프라를 인터넷을 통해 임대해주는 사업이다. 최근엔 기업이 신규 비즈니스에 나설 땐 필수처럼 받아들여진다.
클라우드 제공 업체는 보통 인프라만 제공하다 보니, 이를 계속 모니터링하고 앱과 서비스를 최적화하는 과정은 여전히 각 기업들의 몫이다. 베스핀글로벌은 이를 대신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IT 분야서도 기업들을 대상으로 뛰는 B2B(기업 간 거래) 사업이다.
그동안 국내 IT 기업들이 온라인 게임 등 B2C(기업과 소비자 거래) 영역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왔다. 그러나 B2B 엔터프라이즈 영역에선 눈에 띄는 기업이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많은 경우 대기업 계열 시스템통합(SI) 기업의 하청 정도에 그치다 보니 성장에 발목이 묶여 있었다. 베스핀글로벌은 SI를 거치지 않고 삼성전자와 아모레퍼시픽과 거래 실적을 만들어냈다. 이를 바탕으로 페트로차이나 등 중국 국영기업의 클라우드 컴퓨팅 전환 사업을 따내면서 단숨에 기업가치가 6000억 원대로 뛰어올랐다. 유력한 유니콘 후보(기업가치 1조 원 이상 스타트업)다. 직원수는 창업 초기 3명에서 현재 800명으로 늘었다. 창업 4년 만에 거둔 성과다.
그를 10일 서울 강남구 베스핀글로벌 본사 사무실에 만나, 빠른 성장의 비결을 물었다. 그는 “언제나 톱을 먼저 공략해야 한다”라며 “삼성전자를 먼저 뚫은 것이 주효했다”라고 말했다. 레퍼런스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언급이었다.
“실적부터 만들어야죠. 대기업이라고 다 큰 조직 아닙니다” 작은 협력부터 시작하게는 게 요령
‘중략…’
한국서도 클라우드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과 함꼐 베스핀글로벌을 설립한 게 2015년이다. 기술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 시장이지만, 유독 클라우드 전환만큼은 더뎠다는 점도 기회였다. 한국은 대기업 SI가 IT 인프라 관리를 독점하다 보니, 클라우드로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SI 기업들은 일반 IT 업체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장벽인 동시에, 한편으론 큰 덩치와 조직에 묶여 빠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되레 경쟁해볼 만한 상대였다. 베스핀글로벌이 삼성 SSD를 거치지 않고 따낸 삼성전자 수주는 B2B IT 업체 입장에선 관례를 깬 것으로 평가받는다.
Q. 생물학 전공인데, 인터넷 창업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어떤 이유였나요?
박사과정을 밟다가 중퇴했죠. 1991년부터 유전자 치료 쪽이 전공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언제 시장이 열릴지도 모르고 연구라는 게 보통 인내심과 끈기로 되는 일이 아니겠더라고요. 그때는 기술이 부족해서 유전자 치료 비용도 실험 한 번 하는 데 1만 불(약 1100만 원) 정도 들고, 그것도 수차례 해서 검증해야 하고 말이죠. 이걸 평생 동안 할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들 무렵에 마침 학교 선배가 “요즘 인터넷 사업이 워낙 난리일 정도로 잘 되니까, 한 번 뛰어들어 보나”라고 제안하더군요.
‘중략…’
클라우드 모델도 인터넷 초기부터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컴퓨터 사양 등이 낮아서 실현하기 어려웠죠. 그때 꿈꿨던 모델들은 지금 현실이 됐죠.
Q. 클라우드 시장에 대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깨달은 시점은 언제입니까? 한국으로 옮겨와 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확신을 가진 시점은 2010년입니다. 호스팅 사업이 어찌 보면 클라우드의 전 단계죠. 비즈니스 모델 측면에서는 클라우드랑 같지만 기반 기술이 다르죠.
‘중략…’
궁금해서 어떤 사업인지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클라우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미 만든 형태더군요. 당시에도 연간 1조 원씩 투자하던 아마존과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어요. 그래서 호스트웨이를 팔고 나왔죠.
한국에 온 건 가능성도 봤지만요.

아마존과의 경쟁이 불가능해보이자 ‘그렇다면 아마존과 현력하자’고 생각을 바꾼 이대표. 베스핀글로벌은 아마존의 최우수 협력사를 상징하는 플래티넘 파트너사가 됐다

스타트업의 성공 방향을 위해 조언하고 경험을 나누고 있는 이한주 대표
‘중략…’
안 그래도 클라우드의 가능성을 보기도 했거니와, 한국에서 클라우드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어요. 베스핀글로벌 창업까지 자연스러웠죠.
Q. 클라우드 관리 영역에서 기회를 보신 거죠. 틈새시장이지만, 꽤 큰 틈새인 모양입니다. 돈이 될수록 경쟁상대가 많아질 수도 있고, 대기업들도 참여할 수도 있는 영역일 텐데요. 이런 점에 대한 고민은 없었습니까?
클라우드 전환 비율이 지금 5%도 안 됩니다. 아마 이게 95%로 커질 텐데 이때 시장을 선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건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이 전체가 그래요.
‘중략…’
틈새시장이라고 하지만, 기업 대상 IT 사업이 4000조 원 시장이 될 텐데 우리가 이중 몇 프로만 잡아도 엄청난 거죠. 기회인 건 틀림없었어요.

‘Adopt or Die’. 이한주 대표의 확고한 철학이 드러나는 문구다
대기업이 뛰어들거나, 경쟁이 벌어진다고 해도 워낙 큰 시장이다 보니 한 업체가 시장의 파이를 다 차지하기란 어렵습니다. 새로운 산업은 같이 키우는 거죠.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시장이 이렇게 넓은데 모든 걸 다할 수 없는 시장이에요.
확실한 건 우리의 경쟁자는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이 아니라는 겁니다. 클라우드로 변화하는 시대에 안 하겠다고 고집부리는 쪽이요.
Q. 삼성전자와 아모레퍼시픽 수주를 따냈습니다. 베스핀글로벌이 성장하는 데 있어 큰 전환점이고요.
한국에선 IT기업이 대기업에 접근하려면 당연히 SI를 거쳐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요. 예전에는 대기업집단이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관행이 이었고요. 이게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중략…’
게다가 글로벌에서 경쟁하는 회사는 당연히 관례 상관없이 경쟁력을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전 항상 “최고를 만나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최고는 삼성전자니까요. 당연히 삼성전자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죠. 삼성전자 계약 수주를 하만 따내면 다음 기업에서 영업하는 건 당연히 수월해져요. B2B 사업일수록 업계 선두 기업을 봐야 해요.
“단돈 10만 원 계약이더라도, 매출이 큰 곳은 무조건 들어가야 합니다.”
스타트업은 작게 시작해서 빠르게 성장하는 게 목표입니다. 큰 곳에 들어가면요. 작게 사업을 함께 하더라도, 신뢰를 쌓아감에 따라 사업이 자꾸 커집니다. 대기업을 공략하는 방법은 작게라도 함께 사업을 시작하는 겁니다. 다만, 지금 당장은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곧 커질 것 같은 분야를 뚫어야죠
‘중략…’

베스핀글로벌의 다양한 고객사들
즉, 처음엔 아모레퍼시픽도 중국부터 작게 시작한 거죠. 그러다가 현재는 한국 사업까지 클라우드로 전환했습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시대의 흐름이니까요. 작은 부분부터 협력하면 다른 사업까지 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처음엔 어렵지만 이런 레퍼런스를 쌓아가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하죠.
“중국 국영기업까지 공략… 한국 기업들도 B2B 엔터프라이즈 뛰어들어야”
베스핀글로벌이 중국 국영기업으로 매출 350조 원에 이르는 페트로차이나(중국석유천연가스)를 공략한 것도 “작게라도 시작한다. 단 성장 가능성 있는 분야에서”라는 원칙에 의해서였다. 페트로차이나도 아모레퍼시픽처럼 중동 시장에서 현지법이 바뀌자 클라우드를 알아봤는데, 이를 베스핀글로벌 이란 현지 사무소에서 포착하고 컨설팅을 시작한 게 계기였다고. 한국에서 톱 기업인 삼성전자와 아모레퍼시픽의 사업을 수주했다는 게 좋은 레퍼런스가 돼 설득이 쉬웠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많이들 어떻게 중국 국영기업을 설득했느냐고 물어요. 글로벌 경쟁을 하는 기업들은 최적의 선택을 내리려고 합니다. 중국 기업들도 점점 개방의 흐름에 나올 거고요. 세상이 합리적으로 변한다는 생각.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전제. 이 확신이 있으니까요. 중국에 있는 기업들 중에서도 IT 서비스와 컨설팅을 활발히 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만들어주면 안 할 이유 없죠.
‘중략…’
한편 IT기업 대표에 더해 초기 기업 투자자로서 한국 TI 스타트업의 멘토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그에게 한국의 창업 문화에 기여하고 싶은 바를 물었다. “실력 좋은 IT 인재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경쟁력이에요. 지금의 한국을 만든 선배 세대들 만큼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역량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중략…’
“성공하는 기업과 창업의 비결이 뭐냐고 물으면, 사실 아무도 모르죠. 성공한 창업가를 보면 내성적인 사람도, 외향적인 사람도 있어요. 성실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데 성공하는 경우도 있죠. 성공의 비결은 아무도 이거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시도하고 도전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거죠. 그런데 한국에서 창업을 해볼 만한 사람들도 잘하지 않는 게 안타까워요. 사람들은 합리적이니까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회에선 도전하지 않는 거예요. 그런 문화를 바꿔나가는 게 선배 창업가로서 몫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