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 인공지능(AI)이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은 지 불과 2년여 만에, 기업 현장의 관심은 한층 구체적인 목표를 향하고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AI’보다 ‘한 분야를 완벽하게 해내는 AI’, 이른바 ‘버티컬(산업특화) AI 에이전트’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한 것이다.
17일 삼성SDS ‘버티컬 AI 에이전트, 산업을 혁신하는 특화 AI 시대’ 리포트에 따르면, 산업 특화 AI 에이전트는 단순 자동화를 넘어 복잡한 의사결정과 운영까지 자율적으로 수행하며 각 산업의 핵심 과제를 정조준하고 있다.
최근 AI 활용의 무게중심이 ‘코파일럿’에서 ‘오토파일럿’으로 옮겨가는 가운데, 반복 업무뿐 아니라 상황별 판단과 대응이 요구되는 미션크리티컬(Mission-Critical) 영역에서 사람의 개입 없이도 안정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AI가 필요해진 까닭이다.
버티컬 AI 에이전트의 정의는 특정 도메인의 데이터·규제·업무 프로세스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설계된 지능형 소프트웨어로 소개된다. 각 산업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미세 조정된 대규모언어모델(LLM)에 멀티모달과 외부 시스템 연동 등 필요한 능력을 결합해 실질적인 팀원처럼 행동하는 것이 핵심이다.
버티컬 AI 에이전트는 이미 구체적인 사례와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군사 분야 버티컬 AI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팔란티어는 방산·국방 분야에 특화 데이터 분석 AI를 제공하며 최근 1년 사이에 주가가 300% 넘게 상승, 미국 최대 방산 기업인 록히트마틴의 시가총액을 넘어서기도 했다.
영역별로 살펴보면 제조업도 버티컬 AI 에이전트의 대표적인 수혜 분야다. 생산 라인 최적화, 고장 예측, 품질 검사 등에서 AI 에이전트가 스마트팩토리의 핵심축으로 작동할 수 있다.
미국 전사적자원관리(ERP) 기업 에피코는 제조업 공급망을 위한 버티컬 AI 에이전트 네트워크 ‘에피코 프리즘’을 코드 어시스턴트로 활용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챗봇이 적용된 ERP를 통해 생산·구매·물류 인사이트에 접근하고, 공급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견적 요청서를 자동 발행하는 식이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구글 클라우드가 최근 ‘차량 내 비서’ 개발을 위한 전용 AI 에이전트를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자사 제미나이 모델과 버텍스 AI 기반으로, 내비게이션 음성 제어, 개인화 추천, 차량 정비 알림, 스마트홈 연동 등 운전 경험 전반을 재정의한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이를 전기차 신모델에 적용한 상태다.
금융권 역시 AI 에이전트를 리스크 관리의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머신러닝 기반 신용평가 솔루션은 방대한 금융 데이터를 분석해 부실 위험을 조기에 감지하고, 대출 조건을 정밀 조율한다. 에이전트 기반 사기 탐지 솔루션도 나와 있다. 신원 및 사기방지 플랫폼 기업 앨로이가 금융사 및 핀테크 기업을 위해 출시한 ‘프러드 어택 레이더(Fraud Attack Radar)’가 대표적이다. 세일즈포스의 글로벌 설문조사에 따르면 금융 서비스 분야 고객의 54%가 AI 에이전트 활용을 신뢰하며, 77%는 사기 예방·탐지에 AI가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유통·커머스 분야에서는 고객 경험 혁신을 목표로 한 AI 에이전트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몰과 오프라인 매장을 아우르며 개인화 추천을 제공하고, 수요 예측·재고 관리·동적 가격 책정까지 자동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카카오벤처스가 투자한 스타트업 ‘젠투(Gentoo)’는 온라인 상품 정보와 리뷰를 학습해 오프라인 매장의 베테랑 점원처럼 고객 맞춤형 상담을 제공하며, 실제 이러한 혁신성을 바탕으로 ‘포브스 아시아 100대 유망기업’에 선정됐다.
산업 특화 AI 에이전트의 성공은 기술 그 자체보다 산업별 요구와 데이터 환경을 반영한 설계와 운영이 필수적으로, 결국 ‘문제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범용 AI가 개척한 시장 위에서 이제 특화 AI 에이전트가 각 산업의 경쟁 구도를 재편할 다음 주자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