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biz / 2017-07-03 / 오피니언 / [기사 전문 보기]
1998년 8월 27일은 인터넷 산업에서 기념비적인 날이다. 당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 미국 연방 검사들에게 조사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MS가 PC 운영체제(OS) 시장에서 갖고 있던 독점권을 남용해 인터넷 시장까지 장악하려는 전략이 무력화됐다. 미국 정부와 사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이 없었다면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혁신 기업들이 등장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인터넷 세상을 주도한 또 다른 주역으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라는 새로운 물결이 있다. 오픈소스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과 진화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오픈소스 이전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기업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소수 기업들이 지배해왔다.
하지만 이들과 다르게 소스를 개방하고 무료 운영체제를 제공하는 리눅스의 오픈소스 물결은 인터넷에 기반을 둔 전 세계의 혁신에 불을 당겼다. 더 이상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주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자각을 이끌어냈다. 이 자각을 견인한 주역이 반독점 소송을 제기한 미국 법무부였다는 사실은 아주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터넷 시대가 1998년 8월 27일 미 연방법원의 판결로 비로소 가능해 졌다면, PC의 시대의 서막은 1982년 AT&T에게 내려진 7개 지역으로의 회사 분할 판결 덕분에 열리게 됐다. 1874년에 설립돼서 100여 년간 텔레콤의 혁신을 이끈 AT&T는 트랜지스터와 유닉스, 컴퓨터, 칩 등 컴퓨터에 기반이 되는 모든 부분을 지배했다.
하지만 미 연방법원의 기업 분할 판결 덕분에 새로운 기술들의 등장이 가능해졌고 이는 바로 PC의 보급과 확대에 경쟁체제로 이어졌다. 결국 기업의 독점 구조를 깨고 혁신을 이끌어낸 것은 미국 법무부 즉 정부였고 사법부였다.
20년 전 PC시대를 지나 인터넷 혁명을 마주한 것처럼, 이제 지구촌은 인터넷 시대를 지나 데이터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필연적으로 역사는 반복된다. 통신 독점 기업이 PC 시대도 독점 하고, PC 독점 기업이 다시 인터넷 시대도 독점하려고 했듯이, 인터넷 독점 기업들은 이제 데이터 시대의 독점을 꾀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인터넷의 독점적인 위상을 통해 데이터를 무섭게 쓸어 모으고 있다. 해외에서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우버, 알리바바가 그 주인공이고 한국에서는 네이버, 카카오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데이터의 소유에서 기업의 부가 창출되고 데이터 격차는 바로 기업의 격차로 직결된다. 그로 인해 중국에서는 바이두와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기업들이 데이터를 독점하면서 혁신의 걸림돌이 되고 있고, 한국의 네이버 역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데이터 독점을 하고 있다.
데이터의 독점이 가져올 폭발력과 폐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지구촌은 이제 국가들이 나서서 데이터 혁명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정부 개입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EU는 지난 2010년부터 반독점을 기치로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구글과 아마존, 페이스북에 대한 제재에 나섰다.
또 지난 6월 1일부터 시작된 중국 정부의 네트워크 안전법에 의해 해외 기업은 중국 시장 접근이 어려워졌다.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도 글로벌 IT 기업들의 빅데이터 독점을 막기 위해 빅데이터 공정경쟁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서 빅데이터를 수집하거나 부당하게 활용하면 독점금지법으로 막겠다는 것이 새로운 기준의 핵심이다.
AT&T의 기업 분리와 MS의 반독점 소송 판결에 의해 열렸던 IT 혁신의 역사를 유추해보면 정부의 전략적 개입으로 인해 새로운 혁신이 일어났다. 정부 역할은 산업 육성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도와 혁신 그리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공정한 질서를 만드는 것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이런 점에서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구글과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대기업들의 빅데이터 독점 문제는 거론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IT 공룡들이 빅데이터를 활용한 AI 기술을 통해 향후 모든 산업과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시장을 지배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IT 시장은 한번 앞서게 되면 거의 독점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적절한 개입과 전략이 필요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빅데이터 수집과 활용의 독점적 요소와 네트워크 효과가 미칠 영향을 냉정하고 철저하게 검토해야 한다. 해외 사례 및 기업 간 경쟁 이슈와 함께 편법적 조세 회피 관행을 제어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다만 공정거래위원회의 대응이 국내 IT 기업의 보호를 위한 편협한 조치로 기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국내 IT기업의 데이터 독점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혁신 산업의 탄생을 위한 공정한 경쟁질서를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시의적절하고 유효한 정부의 개입과 역할은 데이터 자본주의 시대로 가는 나침반이자 지도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