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조선 / 2018-12-24 / 이민아 기자 / [기사 전문 보기]

베스핀글로벌 이한주 대표
“한국에 성장 동력, 미래 먹을거리가 없다는 말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많다. 절대 동의할 수 없다.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에서 파생되는 산업만 잡아도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이 먹고살 수 있다.”
클라우드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인 ‘베스핀글로벌’의 이한주(46) 대표는 12월 18일 서울 서초구 베스핀글로벌 본사에서 “코앞에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는 산업이 있는데도 다들 엉뚱한 곳만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운영하는 베스핀글로벌은 기업이 아마존의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애저’ 등 클라우드 서버를 도입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는 B2B(기업 대 기업) 서비스를 지원한다. 클라우드 관리 서비스는 최근 업계에서 주목받는 차세대 성장 산업이다. 가트너에 따르면 산업 규모가 지난해 이미 81조원(722억달러)에 달했다. 2022년까지는 지금의 2.5배 수준인 200조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가 힘주어 ‘한국에 미래 성장 동력이 없다’는 목소리를 비판하는 이유는 그가 클라우드 관리 서비스의 놀라운 성장세를 직접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지난 2015년 12월 창업한 베스핀글로벌은 창업 멤버 4명으로 시작해 올 11월 말 기준 직원 수가 725명으로 불어났다. 아모레퍼시픽, LG 등 굵직한 대기업을 포함해 한국과 중국에서 500여 곳과 계약했다. 이 기간 베스핀글로벌은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의 자회사 ST텔레미디어, 중국 레전트 캐피털 등으로부터 잠재력을 인정받아 총 157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베스핀글로벌은 기업 가치를 약 5000억원으로 평가받아 내년도 ‘차세대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 후보로 꼽히고 있다. 베스핀글로벌은 이 대표의 세번째 창업이다. 첫 번째는 1998년 미국 시카고에서 창업한 호스팅(기업의 홈페이지를 관리해주는 서비스) 회사 ‘호스트웨이’였다. 그는 이 회사를 지난 2013년 미국 사모펀드에 3000억원에 매각했다.
기존에는 기업들이 회사 내에 고성능 컴퓨터를 들여 여기에 서버를 구축하고 정보를 저장했다. 하지만 이제 기업들은 점차 정보를 AWS나 애저 등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하고 있다. 클라우드를 활용하면 훨씬 간단하고 빠르게, 저렴하게 새 서버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릭 몇 번이면 새로운 서버가 생기는데, 이는 기존 IT 환경에선 구현할 수 없는 속도다. 클라우드 도입은 빠른 변화 속에 살아남아야 하는 기업들로서는 필연이라는 얘기다.
베스핀글로벌 본사에서 만난 이 대표는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깔끔하게 머리를 뒤로 넘겨 포마드를 바르고 나타났다. 그는 예전 회사를 3000억원에 매각했던 화려한 경력을 지녔다. 그래서 ‘명품을 휘감고 오지 않을까’ 하는 내심 기대 반 편견 반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번쩍거리는 고급 시계 대신 3년 전부터 썼다는 끈이 얇고 소박한 전자시계를 차고 있었다. 다소 낡아보였던 그 시계에서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외치는 듯한 연쇄 창업가의 야성을 느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해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서 ‘성공’을 거머쥐는 건, 그 어떤 경험보다 짜릿해 중독성이 있다”고 말했다.
1. 클라우드 시대의 개막
빠른 변화 속 생존 위한 기업들의 필연적 선택
왜 기업들은 기존 IT 환경을 버리고 클라우드에 서버를 구축하려고 하나.
“저장하고 분석해야 하는 데이터양이 과거보다 어마어마하게 늘어나, 기존의 값비싼 장비를 활용한 서버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기업들은 데이터를 숨 쉬듯 모아야 한다.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과 직원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회사가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속도 싸움에서 클라우드 서버가 우월한 것도 큰 이유다. 기존에는 새로운 앱을 만들려고 할 때 오프라인 데이터 센터를 구축해야 했다. 클라우드 방식은 AWS, 애저 등에 신청만 하면 서버를 바로 만들 수 있다. 실시간 대응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지금의 은행들은 짧아야 6개월에 한 번 앱을 보강하고, 1년은 걸려야 한 개의 앱을 내놓는다. 그런 속도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서버 사고, 계약하고, 내부 승인받고,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클라우드 서버를 쓰는 글로벌 기업들에 뒤처진다. 매일 새로 들어오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시간으로 서비스를 개발하고 배포해야 하는 시대다.”
언제 클라우드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확신했나.
“첫 창업이었던 호스트웨이를 운영하던 시절이었다. 2010년쯤부터 계약을 따내는 경쟁에서 AWS에 자꾸 밀리기에, 도대체 어떤 서비스이길래 그러나 싶어 분석을 해봤다. 들여다 보니 아마존이 연간 1조원 규모로 투자를 해서 AWS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AWS의 선전을 보면서 처음엔 작은 변화 정도로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우리 회사의 사업을 포함해 기존의 서버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엎을 태풍’임을 깨닫게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클라우드 산업의 규모가 어마어마해질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기회 또한 엄청날 것이라고 봤다. 다만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는 아마존과 경쟁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마존과 협업할 수 있는 형태의 사업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중략…’

베스핀글로벌의 2018년 10월 월례 회의 ‘ATM (All Together Meeting)’ 중 이한주 대표의 발표. ATM은 이 대표가 직접 모든 임직원들에게 회사의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다.
2. ‘강자’와 경쟁보단 빈틈 찾자
월 1조원씩 클라우드 투자하는 아마존을 적 아닌 동지로
‘중략…’
클라우드 관리 서비스가 그렇게 좋은 사업 기회라면 왜 아마존은 직접 하지 않나.
“아마존은 기존 클라우드 서비스를 끊임없이 개선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 관리 서비스까지 할 여력이 없다. MS, 구글 등 다른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경쟁사보다 앞서나가기 위해 수만명의 직원을 투입해도 모자란다고 한다. 게다가 오래된 회사들은 내부에서 사용하는 IT 프로그램이 수십에서 수천 개에 달한다. 수십 년간 이리 붙이고 저리 붙이고 해서 아주 복잡하다. 이런 복잡한 기업별 사정까지 분석해서 클라우드 이전을 도와주는 역할까지 하기엔 아마존의 손이 너무 부족하다. 이런 빈틈에서 고객별 클라우드 전략을 세워주고 서버 관리 프로그램도 만들어 주는 것이 베스핀글로벌의 클라우드 관리 서비스다.”
지금까지 왜 클라우드 관리 서비스를 하는 회사가 없었나.
“자동차가 발명된 후에 자동차 보험이 생겼듯, 클라우드가 광범위하게 확대될 때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클라우드가 세상을 주도할 것이라고 나도 열변하고 있지만, 현재 클라우드 서비스가 전체 IT 환경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도 안 된다. 아직도 클라우드 산업은 시작 단계다. 앞으로 우리가 개척할 수 있는 시장이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는 말이다.”
3. 뒤처진 B2B IT서비스
글로벌 경쟁 속 대기업도 다급, B2B 스타트업 기회 열려
한국 IT 스타트업 가운데 베스핀글로벌 같은 B2B 기업이 별로 없다.
“한국 IT 인재들은 일찌감치 전부 B2C 사업으로 몰렸다. 재벌 대기업 산하의 각각의 시스템 통합(SI) 업체와 경쟁해봤자 대기업으로부터 계약을 따내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재벌 SI는 삼성SDS, LG CNS 같은 회사들이다. 삼성SDS의 먹을거리는 오로지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계열사의 IT 시스템 관리 서비스다. 미국 실리콘밸리에도, 중국에도 없는 아주 기형적인 존재들이다. 한국의 B2B 관련 IT 경쟁력을 짓밟은 원흉이라고 생각한다. 삼성SDS가 1985년 설립 후 시가총액이 17조원에 달한다고 자랑을 한 적이 있다(12월 20일 현재 시총은 15조원대). 삼성SDS처럼 기업에 IT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도의 타타 컨설턴시 서비스(TCS)는 시총이 100조원에 달한다. TCS는 20여 년이 지나 인도라는 나라를 IT 강국으로 바꿀 만큼 파괴력 있는 회사로 성장했다. 이와 비교할 때 삼성SDS는 계열사 물량을 받아 안주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대기업 SI 때문에 한국 B2B IT 서비스 시장은 도저히 혁신이 일어날 수 없는 구조다. 최근 들어 다행히 삼성전자 등에서도 ‘SI 몰아주기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당장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함이다. 삼성전자도 더 이상 삼성SDS를 챙길 여력이 없을 정도로 본인들의 생존이 다급하다는 의미다. 우리는 그런 곳에서 기회를 본다.”
‘중략…’

베스핀글로벌이 2018년 11월 2~3일 1박 2일로 진행한 임원진 리더십 워크숍에서 공동 창업자 박경훈 대표가 발표 중이다.
4. 혁신이 불러올 갈등
스타트업, 필요하다면 나서서 사회와 싸우고 설득하라
‘중략…’
IT 기업이 보여야할 자세는.
“IT 기업은 세상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필요하면 택시 회사와도 직접 부딪쳐야 한다. 운전기사들에게 ‘카풀은 나쁜 게 아니다. 한 달에 200만원 정도는 벌 수 있다’ 하고 나서서 설득도 하고 만나야 한다. 한국 기업가들은 대부분이 은둔형이고, 소통은 다른 직원들을 시킨다. 최종 책임자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는데도 나서지 않는다. 경영자는 언론을 적대하거나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네이버 이해진 창업자만 봐도 언론을 몹시 피해 다닌다. 우리 사회의 혁신을 주도해야 할 사람들이 은둔하고 언론을 피해 다니면 소통은 먼 나라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